음악

[스크랩] 신세대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아이노래 2009. 1. 13. 11:18
신세대 바이올리니스트의 삼색 연주
눈썹에 피어싱, ‘싸이’ 1촌만 1천명…


★...“공연 연습이요? 귀국한 뒤 악기를 점검하느라 아직 못했어요. 그래도 할 줄 아는 게 바이얼린밖에 없어서 걱정은 크게 안해요. 공연 자체에 100%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만큼 평소에 더 많이 노력하게 되니까요.”
바이얼리니스트 권혁주(22)에겐 늘 ‘신세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만큼 젊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가 9일부터 11일까지 독주회를 열어 음악적 결실을 모두 펼쳐 보인다. 정동극장이 뮤지컬, 발레, 클래식, 국악 분야의 촉망받는 젊은 예술가들을 선정해 무대에 올리는 ‘아트 프런티어’ 시리즈의 첫번째 무대다. 그는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를 직접 구상했는데 슬픔, 고난, 기쁨의 주제에 맞춰 타르티니 바이올린린 소나타 G단조, 아나체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C장조 등을 연주한다.
출처 : 내가 피아노를 만나 일생 사랑하노라
글쓴이 : 피아노메니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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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이 선택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한 번 틀리면 100번, 또 틀리면 200번, 그래도 안 돼서 1000번 이상 반복해 연습했어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씨(23)는 3세부터 하루에 6시간씩 연주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하루 12시간으로 늘렸다. 어린 나이에도 혹독한 군대식 훈련을 견뎠기 때문에 악보와 선율이 몸에 배여 있다. 지금은 정신을 딴 데 팔지 않는 한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가 아이큐 184의 천재여서 뛰어난 연주자가 됐다는 것은 완전히 오해다. 악보를 외울 때조차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권씨 얘기다.

"어느 정도 음악을 하면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악보를 외울 수 있어요. 절실하면 다 됩니다. 사람에게 쫓길 때 바퀴벌레도 아이큐가 순간적으로 200까지 올라간다잖아요."

1997년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 2위, 2004년 러시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 2005년 퀸 엘리자베스 바이올린 콩쿠르 입상은 뼈를 깎는 고통으로 얻은 성적이다. 그의 엄청난 연습량은 고스란히 몸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바이올린의 고음을 가까이에서 들어 왼쪽 귀가 잘 안 들리고, 악보를 너무 많이 봐서 색약이 됐다.

권씨는 "난시에 원시ㆍ근시까지 겹쳤다"며 "어깨 한쪽이 올라가고 척추가 휘는 듯한 고통도 겪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연주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다. 그런 고민을 할 수 없었을 정도로 오직 연습에만 매달렸기 때문.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밖에 몰랐고, 다른 분야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도 터득했다. 연주평이나 기사를 거의 읽지 않고 오로지 연습에만 몰두하는 편이다.

"모든 사람들의 취향을 다 맞출 수는 없어요. 제 입맛에 맞으면 그게 정답입니다. 어쩌다 못해도 어쩔 수 없는 거죠. 그저 묵묵히 공부하고 연주회 준비를 합니다."

오직 한곳을 바라보는 뚝심과 피나는 연습 덕분에 그는 짧은 시간에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거장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선택한 젊은 연주자가 됐다. 아직은 '신생아' 교향악단에 불과한 서울시향이 근육과 살을 붙여야 하는 올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협연자로 그를 발탁한 것.



그는 오른쪽 눈썹에 티타늄 소재 피어싱을 하고 있다. 보수적인 음악계에서 상당히 눈에 띄는 모습이다. 여느 젊은이들처럼 일종의 반항심 때문일까.

"4년 전 그냥 심심해서 해본 거예요. 코에다 뚫으면 소처럼 보일 것 같고, 입술에다 하면 음료수가 샐 수 있다고 해서요. 너무 오래 돼서 피어싱의 존재를 잘 못 느껴요. 거울도 거의 안 보거든요."

'바이올린의 대모' 김남윤 씨 제자인 그는 9세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졸업했다. 올 하반기에는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유럽으로 떠날 계획이다. 폭넓게 공부하고 싶다는 권씨는 '내 연주회에 온 사람을 또 오게 만드는 음악가'를 꿈꾼다 .

 

권혁주는 2004년 칼 닐센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했다. 이듬해 퀸 엘리자베스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주목받았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수학한 후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