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틀리면 100번, 또 틀리면 200번, 그래도 안 돼서 1000번 이상 반복해 연습했어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씨(23)는 3세부터 하루에 6시간씩 연주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하루 12시간으로 늘렸다. 어린 나이에도 혹독한 군대식 훈련을 견뎠기 때문에 악보와 선율이 몸에 배여 있다. 지금은 정신을 딴 데 팔지 않는 한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가 아이큐 184의 천재여서 뛰어난 연주자가 됐다는 것은 완전히 오해다. 악보를 외울 때조차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권씨 얘기다.
"어느 정도 음악을 하면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악보를 외울 수 있어요. 절실하면 다 됩니다. 사람에게 쫓길 때 바퀴벌레도 아이큐가 순간적으로 200까지 올라간다잖아요."
1997년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 2위, 2004년 러시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 2005년 퀸 엘리자베스 바이올린 콩쿠르 입상은 뼈를 깎는 고통으로 얻은 성적이다. 그의 엄청난 연습량은 고스란히 몸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바이올린의 고음을 가까이에서 들어 왼쪽 귀가 잘 안 들리고, 악보를 너무 많이 봐서 색약이 됐다.
권씨는 "난시에 원시ㆍ근시까지 겹쳤다"며 "어깨 한쪽이 올라가고 척추가 휘는 듯한 고통도 겪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연주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다. 그런 고민을 할 수 없었을 정도로 오직 연습에만 매달렸기 때문.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밖에 몰랐고, 다른 분야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도 터득했다. 연주평이나 기사를 거의 읽지 않고 오로지 연습에만 몰두하는 편이다.
"모든 사람들의 취향을 다 맞출 수는 없어요. 제 입맛에 맞으면 그게 정답입니다. 어쩌다 못해도 어쩔 수 없는 거죠. 그저 묵묵히 공부하고 연주회 준비를 합니다."
오직 한곳을 바라보는 뚝심과 피나는 연습 덕분에 그는 짧은 시간에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거장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선택한 젊은 연주자가 됐다. 아직은 '신생아' 교향악단에 불과한 서울시향이 근육과 살을 붙여야 하는 올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협연자로 그를 발탁한 것.
그는 오른쪽 눈썹에 티타늄 소재 피어싱을 하고 있다. 보수적인 음악계에서 상당히 눈에 띄는 모습이다. 여느 젊은이들처럼 일종의 반항심 때문일까.
"4년 전 그냥 심심해서 해본 거예요. 코에다 뚫으면 소처럼 보일 것 같고, 입술에다 하면 음료수가 샐 수 있다고 해서요. 너무 오래 돼서 피어싱의 존재를 잘 못 느껴요. 거울도 거의 안 보거든요."
'바이올린의 대모' 김남윤 씨 제자인 그는 9세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졸업했다. 올 하반기에는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유럽으로 떠날 계획이다. 폭넓게 공부하고 싶다는 권씨는 '내 연주회에 온 사람을 또 오게 만드는 음악가'를 꿈꾼다 .
권혁주는 2004년 칼 닐센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했다. 이듬해 퀸 엘리자베스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주목받았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수학한 후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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